2008년 4월 25일 금요일

택배왔어요~



!?








인튜어스3 6X8입니다!




드이어 샀어요!
예전에 쓰던 인튜어스2 4X5가 몇달전부터 판대기 인식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김에 하나 사버렸습니다.(5분간격으
로 때려줘야 말을듣던 녀석...)

이녀석이죠...5년 이상 저와 함께해온 동반자... 회사에서도 견디고, 군대에서 육공을 타고다니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백전 노장... 워낙 험하게써서 그런지 벌써 치매가 왔습니다.



크기 비교입니다. 상당히 크군요, 인튜어스2 6X8보다도 조금 더큰것 같습니다. 거추장스러운 단축버튼 때문인듯... 사실 많은 단축키를 쓰는 사람에겐 의미없는 버튼입니다. 키보드가 더 편하죠. 마우스 대용으로 쓸때 스크롤바를 내리는 터치패드는 쓸만한듯 합니다. 디자인은 외각을 유광처리해서 간지 폭풍입니다. 모던하고 고급스럽습니다.

타블렛의 핵심기술이 들어가며 제일 비싸다는 그 펜입니다. 디자인은 퇴보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사용감은 더 편합니다. 고무패킹이 인튜오스2처럼 매끈하지 않고 마찰력이 있어서 손에 잘 감깁니다. 전 버전에 비해 조금 더 긴편이라는것도 장점이겠군요.


제 주변엔 압력감지가 높은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사용자들의 평이 많은데, 인튜어스1때부터 1024레벨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이상의 레벨은 의미가 없을듯 합니다. 인튜어스1을 쓰던시절 그라파이어1과 같이 쓴적이 있는데, 인튜어스 펜심이 어느정도 달았을때 그라파이어와 비슷한느낌을 받았었던 기억이 나네요. 심도 서서히 달아가서 사실 변화를 느끼긴 힘들고, 교체했을때 갑작스러운 압력의 압박을 느껴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 들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상당히 미세한 감각이라, 어지간히 민감하지 않으면 쓰는데 큰 불편은 없습니다.

인튜어스3의 특징중 가장 먼저 느껴지는것은 그립감 입니다. 1이나 2의 경우 판 표면의 마찰력이 낮아 미끄러지는듯한 느낌이 상당한 이질감과 불안감을 줬다면, 3의 경우는 적당한 마찰력으로 종이에 그리는듯한 질감에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펠트심은 마찰력이 일반심보다 높은편이라 상당히 기분좋은 촉감을 느끼게 해줍니다.(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듯한 느낌입니다.)

펜 자체도 손에 잘 달라붙는 느낌이라 더욱 쾌적합니다. 그 이외에도 해상도나 응답속도가 높아졌다고 합니다만, 몸으로 느끼긴 힘들 듯 합니다.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인튜오스1과 2의 큰 차이는 펜의 편함에 있었던듯합니다. 1의 경우 너무 얇고 단단해서 오래쓰면 손이 쉽게 피로했던데 비해, 2의 경우 펜이 굵어지고 고무패킹이 있어서 피로를 덜어줬던 느낌이였습니다.

2와 3의 차이는 드로잉시 표면과 손잡이 고무의 그립감을 높혀 드로잉 감을 쾌적하게 만든 차이가 있다고 하겠군요.

기종을 떠나 싸이즈에 대한 부분을 말하자면 몇년전만해도 컴퓨터로 드로잉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어서 4X5정도면 아무문제없이 썼었습니다. 밑그림 스캔, 포토샵 채색을 항상 기본으로 작업해와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물량전때는 빠른 스트로크시 싸이즈가 작은 편이 손의 피로를 그나마 덜어주는 느낌이 들어 편했습니다만, 드로잉을 하면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작은 싸이즈안에서 모니터 전체의 해상도를 감당하는 만큼, 미세한 손의 떨림에도 타블렛이 민감하게 반응해 느린 스트로크시에 원하는 라인을 그리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아는 지인에게 팬시 그림의 펜터치와 채색을 부탁받았을때 감을 못잡아 해맨 기억이 있군요.) 확실히 드로잉시에는 6X8이 전체적으로 편하다는 느낌입니다. 단점이라고 하면 빠르고 긴 스트로크시 손을 조금더 넓게 움직여야한다는 점 정도군요.

그리고 저의 경우 질감을 신경쓰지않는 채색시에는(일반적인 포토샵채색) 4X5가 아직은 편하다는 느낌입니다. 손목만 까닥거려도 되니까요. 사실 압력감지도 깔끔한 채색을 할때는 그라파이어처럼 낮은쪽이 더 편하다는 느김을 받던적도 많습니다.

결국 자신의 손에 익숙한것이 최고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인튜어스2 4X5와 인튜어스3 6X8의 드로잉에 대한 개인적인 비교는, 인튜어스3 6X8의 압승입니다. 색칠을하면 또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인튜어스2 4X5


인튜어스3 6X8





결국... 눈이 바뀌거나,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이상 결과물의 퀄리티와는 관계없습니다만...;;;


작업환경의 쾌적함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2008년 4월 17일 목요일

홍길동67


언젠가 생각과 자료가 정리된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관한 글을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있다.
만약 쓴다면 첫번째는 역시 [홍길동67]에 관한 글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잃어버린 역사의 관점에서 쓰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틀전, 난 경향신문에서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 글을 읽었다.

앞으로도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전설로만 전해지며, 절대로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홍길동67]의 필름이 발견된 것이다...

1.한국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CF나 다른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무엇일까? 대부분 알고있겠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아톰 TV판이다.

1963년에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을 모르는 애니메이션 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 보면 그다지 좋은 퀄리티는 아닌 이 흑백 애니는 당시로써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반복적인 동작과 초당 16프레임 이하로 줄여버린 이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그 인기는 한국까지 전해졌다. 그 당시 아시아에서 실사 이외의 영상물을 처음 접한 한국과 일본 사람들에게는 분명 어마어마한 충격이였을 것이다. 그림이 움직인다니!(이당시 애니메이션이란 디즈니 이외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였다.(내가 알고있는 것이 정확하다면 최초는 럭키 치약CF이며, 일반 카메라로 필름을 찍는 정말 열악한 제작 환경이였던 것으로 안다.)

전후 일본의 우울하던 시기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아톰.

그리고 더욱더 우울하던 시기의 한국...

그후 4년.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것이 없던 한국에서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신동헌 감독님의 [홍길동67]. 전설의 시작이였다.


2.독보적인 퀄리티.

홍길동67이 세운 기록은 어마어마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기법은 보통 데츠카 오사무에서 린타로에게 이어지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 최대한 활용 할 수 있는  테크닉을 만들어왔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인데. 일본이나 한국이나 땅덩어리가 작고 인구도 그다지 많은편이 아니기에 큰돈을 들일 수 없다. 90년대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은, 보통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부드럽고 일본것은 딱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이건 당연한 것인데. 쉽게 말해 물량전이다.
1초에 24장의 그림이 풀로 들어가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당연히 더 부드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많큼 시장이 받처주는 것이다.)

대신 일본의 경우는 동화매수가 적은 대신 배경의 디테일이나, 광원효과등의 특수효과를 이용한 눈속임. 또는 연출의 변화를 통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오늘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것이다.

즉,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일본조차도 감히 꿈 꿀 수 없었던 것이 초당 24장의 그림이 돌아가는 풀 애니메이션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낸 것이 [홍길동 67]이다.(물론 그전에 진로소주CF가 있지만, 장편애니메이션이 아님으로 넘어가자.)

홍길동의 총 동화 매수는 12만 5천 3백장이다. 이건 엄청난 물량이다. 80년대에 제작된 아키라가 13만 5천장인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지금도 쉽게 흉내낼 수 있는 물량이 아니다. 덕분에 홍길동은 당시 디즈니 못지않은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지게된 것이다.

물론 움직임이 부드럽기만 한것은 아니다. 두번째 특징은 선녹음 방식이다. 어지간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직까지는 영상을 만든뒤 영상에 맞춰 성우들이 연기를 한다. 이방식은 연기할때 성우들이 상황을 쉽게 파악하고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지만, 미세하게 입모양과 목소리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이 선녹음방식으로, 성우들의 연기를 바탕으로 입모양을 맞춰서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90년대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뮤지컬부분이 강한면이 있었다.(하루히의 밴드 연주 부분도, 완성된 노래에 원화를 맞추어 그렸을 것이라 추측한다. 거의 80%이상 확신하지만, 개인적인 추측일뿐이다.) 문제는 돈이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홍길동은 지금도 시도하기 힘든 선녹음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세번째는 이중촬영 기법이다. 지금은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디즈니가 아니면 시도하기 힘들었던 기법이다. 멀리있거나 너무 가까이있는 배경의 초점을 흐려서 원근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포토샵의 블러필터라고 생각하면 쉽겠다.(카매라가 취미인 감독님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법이라고 밝혀 더욱 놀라게 만든 부분이기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60년대에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면서 풀컬러였다고 하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든것이 열악한 시설과 노하우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수없다.(필름이 부족해서 미군이 항공촬영할때 썼던 필름을 양잿물에 씼어서 다시썼다거나, 셀이 부족해서 미군이 버린 비닐을 수거해 사용한 일화는 이미 전설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수준의 눈으로 보자면 댓생이 나갔다거나, 연출이 지루할수도 있지만, 당시의 애니메이션으로는 세계에서 미국이외에는 경쟁상대가 없는 퀄리티였다.

정말 뛰어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말겠다는 무시무시만 열정과 집념, 그리고 뼈를 깎는 고통이 만들어낸 기적일것이다.


3.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지 못한 한국의 문화 시스템

물론 엄청난 퀄리티답게 홍길동은 엄청난 흥행을 한다. 지금처럼 애니메이션에대한 삐뚤어진 사고방식이 존제하지 않던때라,(어린친구들은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내가 어릴때는 담배, 만화방, 오락실은 비행청소년의 3대 상징이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위해 몰려들었다.

1967년 1월 7일. 대한극장 앞에서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위해 늘어선 엄청난 줄을 목격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개봉 4일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수치는 당시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준다.(예상외의 큰 흥행으로 극장에서는 써비스로 500명마다 설탕을 한푸대씩 퍼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90년대 중반 잘나가는 한국영화가 30만관객이였던것을 떠올려보자.)

아무튼 홍길동의 흥행후. 신동현 감독님은 후속작품 [호피와 차돌 바위 67]을 동아극장에서 상영. 또다시 흥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신동헌 감독님은 그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게되었다.([돌아온 영웅 홍길동95]은 이름만 총감독이였지 사실상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사들이 돈만 챙기고, 투자를 해주지않았던 상황에서 신동헌 감독님은 제작비를 회수하지못해 집을 날릴뻔 한 것이다.

이렇게 두편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얻어진 많은 노하우들은 신화로만 끝나며 물거품 처럼 사라지게된다.

그후 손에 꼽을 흥행작들이 나타난적도 있지만(로보트 태권V등이 있겠다. 물론 완성도로 따지자면 홍길동 만큼은 아니겠다.)
그것들조차 단발로 끝나며, 군사정부에 의한 문화에 대한 탄압,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무시등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은 결국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홍길동의 전설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갔다.


4.다시 찾은 홍길동의 의미.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홍길동 후에 꾸준히 애니메이션이 제작, 발전되었다면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라고...

나름대로 우리나라 시장에 맞는 모습으로 발전되어가지 않았을까? 지금보단 나같은 딴따라가 희망이 있지않았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미래는 바꿔갈수있다. 과거를 바탕으로 반성하고 인식을 바로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것은 없지않을까?

이번에 필름이 발견된곳은 부끄럽게도 일본이다. 돈을 만지고 버려버린 필름과. 이웃나라의 문화이지만 가치를 알고 소장하고 있었던것.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두사람의 천재가 있다.

일본에는 데츠카 오사무라는 천재가 [철완아톰]을 제작했었다.

한국에는 신동헌이라는 천재가 [홍길동]을 제작했었다.

한 사람은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불리며, 꾸준히 칭송받고 기억되며,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참고문헌]

월간모션(1998년 패간)

애니스쿨(1997년 서울문화사)

 


 

2008년 4월 8일 화요일

드디어 우주시대...




위대한 천재 세르게이 코롤리오프와  용감한 유리 알레스비치 카가린,

그리고 세 마리의 개에게 영광을...



언젠가 스스로 쏴 올릴 수 있기를...

2008년 4월 4일 금요일

굿 스마일. 한번 해보자는거죠?



뭔놈의 출시일이 항상 밀림.... 2년 정도 연기했으니 군대한번 더가도 되겠다....

......








어여와 타칭...-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