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은 계봉 전부터 기대작이었습니다만, 주변에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워낙 없다보니 계속 미루다가 토요일 날 친구 한 명이랑 같이 보고 왔습니다.
인셉션 같은 영화들은 초반에 룰을 설정해두고 그 룰 안에서 게임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인데, 보통 이런 작품들은 떡밥도 너무 많고, 제대로 감상을 적으려면 견적이 너무 나오기에, "정말 재미있었습니다!"로 감상을 끝내고 싶습니다만, 그러면 블로그질하는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 나름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볼까 합니다. 미리 알려드리자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일단 [인셉션]이 정해놓은 룰… 이랄까 세계관에 대해서입니다만, 이런 부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스노트]에서 사신의 존재를 과학적이라거나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듯이, 이건 작품의 주제와 재미를 위해 그냥 초반부터 깔고 가는 세계관이랄까… 역시 룰인 거지요. 이 룰 안에서 작품이 이루어진다. 라고 하면 저는 특별히 불만이 없는 편입니다. 다만 초반에 깔아놓은 룰을 변경해놓고 '어라 반전!'이라고 하는 작품들은 관객을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셉션에서 '남의 꿈속으로 다이브해서 생각을 훔친다, 또는 생각을 주입한다.'라는 설정은 그냥 룰인 겁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건드리려면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기에 일단 이 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일단 SF에서는 생각보다 꽤 흔한 소재입니다. 뭐랄까… 다이브 과정만 보면 꿈이라기 보단 공각기동대의 전뇌를 해킹하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더군요. SF틱합니다.
하지만 꿈 안에서 무의식에 숨겨진 정보를 캐내는 장면에서는, 확실히 프로이트식 정신분석학적 느낌이 듭니다.
요즘의 생물학과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틀린 부분이 너무 많아 사실상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문화계에는 아직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듯합니다.
확신 할 수 없는 것은, 제가 보는 작품들에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이 문화 전부라고 할 수 없고, 그림을 그리는 입장이지만 부끄럽게도 예술 사조나, 유행하는 경향이라던가 하는 부분의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프로이트는 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요즘은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 하니까, 주된 경향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네요.
제가 정말 재미있게 보다가 9권이후로 모으지 않는 만화책 [호문클루스]도 만화의 내용에 정신분석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을 보면 '꽤 그런 경향이 있는 편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이 만화의 룰에는 뉴에이지 요법인 '두개 천공술'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적해석이 자주 나올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보자면, 아마도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극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설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억압기억이라거나, 꿈 해석에 관한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그럴 듯하지만, 증거들과 부합하지 않으며, 다른 경합 이론들이 더 설득력이 있기에 심리학으로써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질환을 합리적으로 해석해보려는 노력과,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는 치료방식은 높게 평가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대중문화는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의 실물레이션이나 공감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갈등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고 관객, 또는 독자와 공감이 잘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길게 적다간 끝이 없을 것 같기에 본 영화의 감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인셉션]에는 3가지정도의 큰 갈등이 극을 이끌고 갑니다.
하나는 코브의 맬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두 번째는 스토리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피셔에 대한 인셉션 미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보통 '통속의 뇌'에 대한 소재를 가진 SF에서 자주 나오는 인식문제이지요.(장자의 나비이야기도 생각나지요.)
이 세 가지 갈등은 크게 두 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플롯은 코브의 갈등과 인셉션 미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감독의 주제가 주로 담겨있는 플롯은 코브 자신의 죄책감과의 갈등이라고 봅니다.
코브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추억을 소중히 기억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아내에게 행했던 인셉션은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기억을 억압하지는 않았지만, 맬(죄책감)과 정면으로 마주하지도 못합니다.
림보에서의 삶을 위해 현실에 대한 기억을 봉인했던(억압기억) 맬과는 달리, 코브는 자신의 죄책감을 인식하고는 있습니다만, 떠올리기를 회피하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는데, 코브는 현실에서의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있습니다만, 무의식속에서는 달콤한 꿈의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맬(코브의 무의식)을 통해서 끊임없이 유혹을 받지요.
아리아드네는 그런 코브에게 훌륭한 상담자, 또는 조언자의 역할을 합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자신의 죄책감, 또는 후회를 당당히 마주보도록 요구하지요.
그리고 맬에 대한 코브의 인셉션의 결과를 통해 생각의 주입, 또는 세뇌의 위험에 대한 메시지도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볼 때 인셉션의 주제는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이해하라.', '달콤한 망상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마라'… 뭐, 이 비슷한 느낌의 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확신은 없습니다. 영화가 꽤 복잡해서…;;;;)
[인셉션]은 위에서 말한 룰과 복합적인 플롯들이 훌륭한 연출력으로 잘 버무려져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성격도 잘 살아있고 매력적입니다. 미장센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꽤 많이 담은 데다, 몽매주의적인 편집이 재미있긴 하지만 약간 헷갈리게 만들어, 한 번만 보고 전부 이해하기엔 좀 벅차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마니악한 취향을 자극합니다.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마니아들에게는 다시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랄까요.(애니메이션으로 치면 영화판보다는 OVA판이라는 느낌이군요.)
DVD가 나오면 소장해볼만한 영화입니다.
곱씹어 볼만한 부분 중에 한 가지를 말해보자면, 꿈에 관한 부분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인셉션]의 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꾸는 꿈과는 많이 다른, 가상현실의 의미도 강한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통 꿈을 꿀 때 감각을 느끼긴 힘들죠. 수면 중에는 뇌의 아세틸콜린이 분비되면서 감각회로를 차단하기 때문입니다.(물론 꿈속이 아닌 실제 세계의 강한 자극은 영향을 줍니다. 잠에서 깨어난다거나, 깨지 못한다면 꿈속에 그 자극이 편입되는 식이지요.)
또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꿈속에서 어떤 신비로운 현상이나,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그것을 꿈이라고 느끼진 않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가장 유력한 설명은 REM수면기에 '전 전두엽' 피질의 활동이 감소하는데, 이 부위는 계획과 자각이 이루어지는 부위라는 것입니다. 이 '전 전두엽'의 활동이 감소하는 것이 우리가 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외에도 꿈이 무의식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무작위적인 기억으로 이루어진 뇌가 꾸며낸 이야기라거나 하는 등등의 특징은 괜히 글을 길어지게 만들 것 같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의 꿈이란 [매트릭스]나 [아발론]의 가상세계나, [공각기동대]의 전뇌 해킹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가상세계(꿈)에 대한 감독의 재미있는 장난이 몽매주의적인 편집입니다.
[매트릭스]나 [아발론]의 경우는 가상세계를 우리의 현실세계로 묘사하고 실재세계를 SF틱하게 묘사함으로 관객들에게 인식문제에 대한 재미를 주었다면,
인셉션은 중요한 장면에서 의도적인 편집으로 내용을 애매하게 만들어 '어쩌면 가상세계일지도~'라는 듯한 장난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또 이 부분이 내용에 대한 많은 해석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보자면, 그냥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아이들이랑 만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몇까지 애매한 편집을 빼고 내용만 생각해보면 가장 납득하기 쉽고 설명이 필요 없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결말들을 생각해보자면(코브가 림보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거나, 다른 멤버가 코브를 인셉션한다거나) 더욱 납득하기 힘들고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게 됩니다.
혹시나 감독판이 따로 나와서 무언가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 이상 엔딩에 대한 제 생각은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그 이외에도 무언가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지만, 한 번 밖에 보지 않아서 기억이 애매한 부분도 있으니 여기서 줄일까 합니다.
아무튼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한 번에 감정을 휘어잡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역시 곱씹어 볼만한 영화가 취향인걸 보면 저도 꽤 오덕스럽다고 느낍니다.
재미있었습니다!!